재생E 증가 따른 망 환경 변화에 기술기준 고도화도 추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이고 투명한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해 ‘전력망 기술기준(그리드코드)’ 고도화를 추진하고 독립적인 전문 감독 기구 역할을 할 ‘전력감독원’ 신설에 속도를 낸다고 13일 밝혔다. 재생에너지 확산과 전력망 참여 주체의 폭발적인 증가로 전력망 운영의 기술적 복잡성이 높아지는 것에 대응하고 보다 전문적이고 실효성 있는 감독 체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기후부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100GW’ 에너지 대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전력망 운영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재생에너지, 원자력 등 출력을 자유롭게 조절하기 어려운 경직성 전원이 봄철 경부하 시점 전체 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5월 기준 62.3%에서 2025년 5월에는 81.1%로 급상승했다.
반면 연중 최저·최대 전력수요 간 격차는 2021년 48.7GW에서 지난해 60.2GW로 확대되고 있다. 유연한 전력 수급 관리가 절실한 상황에서 대응 능력은 오히려 제약을 받는 역설적 상황이다. 이에 따른 직접적인 결과가 ‘출력제어’의 급증이다. 출력제어 횟수는 2024년 27회에서 지난해 82회로 3배 늘었고 제어량은 12.4GWh에서 109.4GWh로 9배 증가했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물리적 특성이 석탄·액화천연가스(LNG) 등 전통적인 동기발전기와 판이하다는 점도 새로운 과제다. 동기발전기가 주파수 형성, 물리적 관성 제공, 무효전력 공급 등 기능을 수행하는 반면 인버터 기반의 태양광·풍력은 주파수를 추종하고 관성이 결여돼 있으며 무효전력 공급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현재의 전력망 운영 체계는 동기발전기의 특성을 상수로 가정하고 설계돼 있다. 재생에너지 시대를 맞아 전력망 운영의 혁신이 시급한 이유다.
이처럼 전력망 운영의 기술적 복잡성이 급격히 높아지는데도 이를 규율하는 ‘전력망 기술기준(그리드코드)’의 개선은 지체되고 있다. 그리드코드는 계통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가 지켜야 하는 기술적·제도적 규정을 뜻한다. 현재 국내 그리드코드는 전력계통 신뢰도, 전기품질 유지 기준, 전력시장 운영 규칙, 송·배전용 전기설비 이용 규정 등으로 규정돼 있다. 에너지 대전환 대응, 구체화·정교화, 관리의 전문성, 일부 규칙·규정의 법적 강제력 등은 한계로 꼽힌다.
전력거래소가 수행하는 출력제어, 전력망 휴전, 고장 조사 등 전력망 운영 조치의 적정성을 독립적으로 평가할 상설기구 역시 부재한 상태다.
전력시장 측면에서도 구조적 문제가 누적되고 있다. 분산자원 확산과 민자발전사 증가로 전력시장 참여 주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전력거래소 회원사 수는 2001년 19개에서 지난해 6월 기준 7096개로 급증했다. 전력시장을 경유하지 않는 한국전력과의 전력거래(한전 PPA) 계약은 18만건에 달하며, 직접구매·구역전기사업·통합발전소(VPP) 등 새로운 거래 형태와 사업자 유형이 등장하며 시장 구조는 날로 복잡해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시장 감시 체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력시장 운영기관인 전력거래소에는 시장 감시를 위한 시장감시실이 있지만 단 7명 규모의 소조직에 불과하며, 운영과 감시 기능이 사실상 일체화돼 있다.
더욱이 기존 감시 체계는 전력시장 내 거래에만 국한돼 직접전력거래(직접 PPA), 분산에너지 특구 내 거래 등 증가 중인 장외거래는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신규 시장 제도가 전기사용자에 미치는 영향 등 비용·효과를 정량적으로 검증할 분석 체계도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주요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전력 규제·감독 체계는 규모와 전문성 면에서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 약 1500명)가 전력 규제·감독을 담당하며, 전력망 안정성 분야는 북미전력계통신뢰도공사(NERC: North American Electric Reliability Corporation, 약 250명), 시장 감시 분야는 전력망 운영자별(PJM 등)로 설치된 시장감시기구(MMU: Market Monitoring Unit, 각 20~50명 규모)가 역할을 분담한다. 영국은 가스·전력시장위원회(GEMA: Gas and Electricity Markets Authority)와 가스·전력시장청(Ofgem: Office of Gas and Electricity Markets, 약 1900명)이 전력망과 시장 감독을 전담한다. 독일은 연방네트워크청(BNetzA: Bundesnetzagentur, 약 3000명)이 전기·가스·통신·우편·철도를 아우르는 독임제 행정청으로서 전력 규제를 직접 수행한다. 일본도 전력·가스시장감시위원회(EGC: Electricity and Gas Market Surveillance Commission, 약 140명)를 설립해 독립적인 시장 감시 체계를 갖췄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후부가 전기위원회(위원회 9명·사무국 9명)와 함께 별도의 전담 전문 기관 없이 해당 책무를 맡고 있다. 더불어 전력거래소의 시장감시실이 전력시장 감시 업무를 지원하고는 있으나 독립성과 전문성 양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이에 기후부가 제시한 해법의 핵심은 전문 기관 신설과 선수와 심판의 분리다. 전력거래소와 한전 등은 전력망 운영과 전기사업에 집중하고 이를 독립적으로 감독하는 전문기구로 전력감독원을 신설을 검토하겠다는 구상이다.
전력감독원은 기후부 및 전기위원회와 긴밀한 협력 체계를 유지하되 기관 자체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고히 할 수 있도록 관련 근거를 법률에 명문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력감독원의 역할은 크게 전력망 감독, 전력시장 감시 두 축으로 구성된다. 전력망 감독 측면에서는 전력망 기술기준(그리드코드)의 고도화 및 이행 관리, 출력제어·비상조치 등 전력망 운영 조치의 적절성 평가, 주요 설비 고장 원인의 체계적 조사, 재생에너지 등 분산전원 통합 관제 체계 확립을 위한 기관 간 협조 체계 마련에 역점을 둘 예정이다.
전력시장 감시 측면에서는 △시장 내외의 부당거래 감시 △시장 가격·집중도·지배력 분석을 통한 경쟁구조 평가 △신규·소규모 사업자의 시장 진입 장벽 점검 △전력시장과 장외거래 간 연계 적정성 및 거래 효율성 평가 △전기사업자와 소비자 간 분쟁 조정 절차 지원 등 소비자 보호 업무를 수행한다. 데이터를 통한 스마트한 전력 시스템 관리를 위한 전력시장·전력망 정보공개 기준 마련 및 분석 보고서 작성도 주요 역할이 될 전망이다.
전력감독원 설립에 대한 논의는 국회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 1월 김정호 의원이 에너지법과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을 필두로 5월에는 허성무 의원이 전기위원회 기능 강화와 전력감독원 설립을 골자로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낸 바 있다. 이어 박지혜 의원(7월), 김소희 의원(11월), 곽상언 의원(12월), 서왕진 의원(올해 1월)까지 유사한 취지의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연이어 발의했다. 현재 관련 법안들은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돼 논의 중이다. 기후부는 관계 부처 의견을 수렴하고 국회와 긴밀히 협의해 전력감독원 설립을 진행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