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부 압박에…한전, 25.7조 자구책 내고 사장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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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부 압박에…한전, 25.7조 자구책 내고 사장 사퇴
  • 윤우식 기자
  • 승인 2023.05.1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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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재정건전화 계획에 5.6조 추가…창사 이래 최대
남서울본부 매각하고 한전아트센터 등 10개 사옥 임대
전력그룹사 임금 인상분 반납…3급 50%·2급 이상 100%
정승일 사장 “전기요금 적기 인상 불가피…이해 부탁”
12일 한전 나주 본사에서 열린 ‘비상경영 및 경영혁신 실천 다짐대회’에서 정승일 사장이 자구책을 발표하고 있다. 정 사장은 자구책 발표 후 사의를 표명했다.
12일 한전 나주 본사에서 열린 ‘비상경영 및 경영혁신 실천 다짐대회’에서 정승일 사장이 자구책을 발표하고 있다. 정 사장은 자구책 발표 후 사의를 표명했다.

전기요금 인상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으로부터 자구노력 압박을 받아온 한국전력이 12일 나주 본사에서 ‘비상경영 및 경영혁신 실천 다짐대회’를 열고 2026년까지 25조 7000억원을 절감하는 내용의 재무 개선안을 내놨다. 앞서 지난 2월 제시했던 기존 20조 1000억원 규모의 재정건전화 방안에 5조 6000억원을 추가로 얹은 자구책이다.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최우선 과제로 재무위기 극복을 꼽았던 정승일 한전 사장은 이날 전기요금 인상의 전제조건으로 여겨졌던 자구책 발표 직후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2021년 6월 취임 후 23개월 만이자 임기를 1년여 남긴 시점에서다.

정 사장은 전기요금 정상화 관련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국민 여러분께 부담을 드리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한전은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절감한다”며 “오늘자로 사장직을 내려놓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 사장은 “올해 1분기 이후 유보됐던 전기요금 조정 절차의 첫 단추인 자구노력 계획을 발표하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전기요금 정상화는 한전이 경영 정상화로 가는 길에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정 사장은 “현재 전력 판매가격이 구입가격에 현저히 미달하고 있어 요금 정상화가 지연될 경우 전력의 안정적 공급 차질과 한전채 발행 증가로 인한 금융시장 왜곡, 에너지산업 생태계 불안 등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전 국민이 사용하는 전기에 한전 임직원의 땀방울이 녹아있음을 기억해달라”며 “진정한 국민 기업이자 국가 자산인 한전이 국민 여러분께 신뢰를 회복하고 든든한 공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변함없는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당초 자구책 마련에 집중하며, 사퇴는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정 사장이 옷을 벗기로 결정한 건 그간 정부와 여당에서 제기해온 방만 경영 책임론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8일 “정 사장은 방만 경영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자리에서 물러나라”며 사퇴를 요구한 데 이어 지난 2일에도 “자구노력도 못한다면 자리를 내놓기 바란다”고 압박했다.

이를 두고 에너지업계에서는 명분이 없는 ‘무리한 공기업 사장 찍어내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에너지공기업 한 관계자는 “한전의 대규모 적자의 원인은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등 연료가격 급등과 전기요금 비현실화 등 외부에 있는데, 내부에서 ‘마른 수건 쥐어짜기’식 대책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라며 “정부가 한전 적자의 책임을 방만 경영 탓으로 돌리면서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임기가 1년여 남은 사장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한전 재무구조 개선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면서 “결국 전 정부에서 임명한 인사라는 점이 사퇴 압박의 진짜 이유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전이 이날 내놓은 5조 6000억원(한전 3조 9000억원·전력그룹사 1조 7000억원) 추가 자구책에는 비용 절감과 자산 매각, 임금 동결 등의 방안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전력설비 건설 시기와 규모를 추가로 이연·조정해 1조 3000억원을 아끼고 업무추진비 등 일상적인 경상경비도 축소해 1조 2000억원을 줄이기로 했다. 이와 함께 정부와 협의를 통해 전력시장제도를 추가로 개선, 영업비용의 90%를 차지하는 전력구입비를 2조 8000억원 절감한다는 계획이다. 시설부담금 단가 조정과 발전자회사의 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 정확도 개선 등 수익 확대(3000억원)도 지속 추진한다.

부동산은 팔 수 있는 건 모두 다 판다. 기존 재정건전화 계획상 44개소(전력그룹사 포함) 외에 수도권 대표 자산인 여의도 남서울본부 매각을 자구책에 새로 추가했다. 남서울본부는 합산가치가 조 단위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전은 ‘지자체 지구단위계획과 연계’, ‘제안공모’ 등을 통해 매각 가치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서초구 소재 한전아트센터 3개 층과 서인천지사 등 전국 10개 사옥의 임대를 우선 추진하고 추가적인 임대 자산도 지속 발굴하기로 했다.

조직·인력 효율화도 꾀한다. 지난 1월 업무통합·조정 등으로 에너지 공기업 최대 규모인 496명의 정원을 감축한 데 이어 전력수요 증가와 에너지 신산업 확대 등에 따른 필수 증가 소요인력 1600여명을 업무 디지털화와 사업소 재편, 업무 광역화 등을 통한 재배치로 자체 흡수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고객창구 및 154kV 변전소 무인화, 설비관리 자동화(로봇·드론 활용), 345kV 변전소와 급전분소 통합 관제 등 일하는 방식의 디지털화를 확대해 약 210명의 기존 인력을 신규 원전 수주·에너지 효율개선 사업 등 미래 성장 분야로 재배치하기로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행정구역 기준으로 유지해온 지역본부 15개 및 지사 234개는 주요 거점 도시 중심으로 조정하고 지역 단위 통합업무센터 운영을 통한 단계적인 업무 광역화를 추진한다. 조직 구조조정과 인력 효율화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에너지효율 등 미래 핵심사업 및 취약계층 지원 등을 총괄하는 전담부서도 신설할 계획이다.

고통 분담 차원의 임직원 임금 인상분 반납도 자구책에 담았다. 반납한 임금 인상분은 취약계층 지원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한전과 전력그룹사의 2직급(부장급) 이상 임직원은 임금 인상분을 전부를, 3직급(차장급) 직원의 경우 인상분 50%를 반납하기로 했다. 성과급은 경영평가 결과가 확정되는 6월께 1직급 이상은 전액, 2직급 직원은 50%를 반납할 계획이다. 한전은 전 직원의 동참도 추진한다. 다만, 노동조합원인 직원의 참여는 노조와의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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